헬레니즘시대의 우주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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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리스타르코스


동심원구들로 이루어진 천체구조와 관찰간의 괴리를 제거하기 위해 헤라클 레이데스는 수성과 금성은 태양 주위를 회전하고 태양을 비롯한 다른 행성과 달은 지구 주위를 회전하는 불완전한 형태의 태양중심설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사모스 출신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B.C.3세기경)는 보다 완전한 태양 중심의 천체 모델을 제시하게 된다. 아르키 메데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리스타르코스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태양이라는 가정하에 지구는 매일 한번씩 자전하면서 일년에 한번 태양 주위 를 공전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구 주위를 도는 달을 제외하고 모든 행성 은 태양 주위를 회전하며 항성은 움직이지 않지만 지구가 자전하는 바람에 지 구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도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항성의 천구가 너무나도 커서 지구의 궤도는 그에 비하면 한 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것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주시차, 즉 지구 공전에 따른 지구와 항성간의 각도의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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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데스의 부분적인 태양 중심설이 근대의 브라헤의 그것에 가까운 것 이상으로 태양 중심의 아리스타르코스의 천체 모델은 코페르니쿠스 (Nicholas Copernicus, 1473-1543)의 지동설과 유사하다. 따라서 아리스타르코 스를 “고대의 코페르니쿠스”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태양 중심설이 서양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 이후의 과학 사는 지구 중심설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태양 중심설의 경우에도 보다 완전한 아리스타르코스의 이론보다는 헤라클레이데스 쪽을 선호했다. 이것은 지구와  천체는 물질적인 구성에 있어서나 지배하는 법칙에 있어 판이하게 다르며 천 상의 세계는 완전하다는 당시로서는 당연시된 상식의 벽을 일반인들이 넘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중심설은 말하자면 천상의 세계의 완전성을 무시하는 신성모독적인 이론이었다. 따라서 스토아학파의 클레안테스(Cleanthes)는 그에게 불경죄의 혐의를 씌우기까지 했다.

아리스타르코스가 당시 일반인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이론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로서는 전혀 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고대의 천문학자로서 는 처음으로 삼각측량법을 이용하여 지구와 달, 태양의 상대적인 크기와 거리를 측정했다. 그가 자신의 측정 방법을 설명한 『태양과 달의 크기와 거리』라는 저술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이 책에서 그는 반달일 때 달과 지구와 태양이 직각삼각형을 이룬다는 전제하에 지구와 달 그리고 지구와 태양을 연결하는 직선이 이루는 각도가 87도라는 측정자료를 토대로 지구와 태양까지의 거리가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의 19배가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2. 에라토스테네스


그리스의 큐레네에서 출생한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B.C.173-192)는 BC 244년경에 아테네에서 이집트로 옮겨 BC 235년에 알렉산드리아의 왕실 부속학술연구소의 도서관원이 되었다. 그는 소수를 발견하는 방법으로서, 에라 토스테네스의 체(코스키콘)를 고안하였고, 정입방체의 배가(倍加)문제를 푸는 기구(메소라본)를 발명하였다. 같은 자오선 위에 있다고 생각되었던 시에네(현 재의 Aswan)와 메로웨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여, 해시계로 지구 둘레의 길이를 처음으로 계산하였다. 그 결과 약 4만 5000 km(정확한 거리는 약 4만 km)라는 근사값을 얻었다. 저서 『지리학:Geographica』(3권)에는 지리학사․수 리지리학 및 각국 지지(地誌)와 지도 작성의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 지리상의  위치를 위도․경도로 표시한 것은 그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별의 목록을 포함한 논문도 썼고, 사학이나 언어학에 관한 저술도 남겼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 둘레의 길이를 계산한 방법을 살펴보면, 그는 하지 때, 시에네(Syene)에서는 태양이 바로 수직선상에 있지만 정북 방향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수직선에서 7도가 기울어진다는 관찰을 토대로 지구의 둘레가 시레네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의 거리의 약 50 배가 된다고 추산했다. 에라토스테네스는 시레네와 알렉산드리아까지의 거리의 추정치를 근거로 최종적 으로 지구의 둘레가 25만 스타디아(1스타디아는 약 1 마일에 해당됨)라는 결론 내렸는데 이 값은 오늘날 받아들이는 값에 상당히 가깝다.

그는 하지 정오에 이집트의 남쪽 시에네(지금의 애스완)에서 태양이 천정에 이르는데, 시에네보다 북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태양이 천정에서 기울어지는 사실을 관측하고, 이 차이를 지구의 표면이 둥글기 때문으로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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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9 에서와 같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천정으로부터 기울어지는 각도는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 사이의 원호에 대응하는 지구의 중심각과 같으므로, 두 도시 사이의 거리 5,000스타디아(약 820km, 1스타디움은 약 178m이다)와 원호가 이루는 각도로부터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여 25,000스타디아라는 값을 얻었다. 이 길이를 현재의 단위로 환산하면 44,500km인데, 실제 길이 40,000km와 10%이내의 오차가 난다. 관측 기구와 방법이 불충분했던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훌륭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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